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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by 우먼링크 2023. 12. 22.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는 10만 구독자가 주목한 유튜브 채널 [충코의 철학]을 운영하는 20대 철학자가 알기 쉽게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세상에 의문을 던지는 53가지 철락 이야기로 철학자들의 머릿속을 파헤친다.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일상적인 예시로써 풀어내는 철학자들의 사유를 통해 누구나 교양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철학적 지식을 얻도록 돕는다.



이 책의 저자는 삶의 해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며 독자가 함께 생각해보기를 제안한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모두 저마다의 철학을 갖고, 자기만의 삶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이 책은 수천 년간 인류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철학자들의 통찰을 통해 급변하는 세상에서 내가 나로서 온전히 살아가는 힘을 길러준다.




저자는 노자의 철학은 속세를 떠나서 사는 사람들을 위한 자연 친화적인 말, 또는 치열하고 답답한 경쟁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말 정도로 여겨지곤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노자의 철학은 어떻게 하면 이 사회에서 최선의 결과를 산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치학적 이론으로도 읽을 수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노자가 물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물처럼 행동하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물에 관한 노자의 말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상선약수, 즉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구절이라는 저자의 글이 흥미롭다.



"그렇다면 물은 어떤 특성을 가졌길래 물을 본받아 행동하면 최고의 선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일까?

먼저, 물은 다른 것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으로 흘러간다. 보통 다른 사물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뻗어나가려 한다. 나무는 햇볕이 있는 위를 향해 자라나야 좋은 나무이며, 건물은 안전한 높이의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이 좋은 건물이다. 사람 역시 양지바르고 공기가 맑은 곳으로 가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반면, 물은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밑을 향해서 흐른다.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장 어두운 곳으로 흘러간다. 그곳은 어두침침하고 냄새가 나는 하수구일 수도 있으며, 깊숙한 진흙탕일 수도 있다. 물은 그런 곳을 피하지 않는다. 그저 길을 따라서, 깊이, 더 깊이 흘러간다.(...)

물의 또 다른 특성은 부쟁이다. 즉,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은 다른 것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자리를 두고 다른 것들과 다투지 않는다. 우리가 남들과 경쟁한다고 느끼는 이유는 같은 목표를 놓고 같은 길로 거기에 도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들과 다른 것에 목표를 두고 다른 길을 걷는 사람은 경쟁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전혀 새로운 곳에서 세상을 바꿀 혁신의 씨앗을 찾아내고, 물처럼 그곳에 깃들어 싹을 틔운다." 



저자는 영국의 철학자 흄이 만약 '원인'이라고 불리는 그 어떤 것도 사실은 정해진 결과를 반드시 불러오지는 못한다면, 그것을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쩐면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 것에 대해 말하여 눈길을 끈다. 흄은 실제로 원인과 결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만약 정말로 원인과 결과가 존재한다면, 그 둘 사이가 특별한 힘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에서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A라는 사건 다음에 B라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 뿐이다. 그 사이를 원인과 결과의 절대적인 관계로 이어주는 특별한 건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고, 원인과 결과는 실제 경험으로 얻어지는 제대로 된 지식이 아니라, 그저 생각 속에 존재하는 것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원인과 결과를 매일 생각하고,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떠올리는 것에 대해서 흄은 습관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고 전한다. 우리는 평소에 원인과 결과에 관계 안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것에 습관적으로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원인과 결과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원인과 결과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흄의 생각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흄이 가졌던 생각의 핵심은 여전히 큰 가르침을 준다. 그는 우리가 평소에 당연히 존재한다고 여기는 많은 것이 사실은 우리의 생각 안에만 존재하고 실제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따고 생각했다. 우리는 때때로 그런 유령 같은 것들에 집착하면서 실제 세상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흄은 그런 불명확한 것들을 찾아내고 제거하고자 했으며,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자 했다. 이런 그의 경험주의적 정신은 합리적인 현대 학문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저자는 철학자 하이데거나 생각하기에 의미가 있는 시간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은 죽음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평소에 시간을 그저 양적이고 추상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자기 죽음을 떠올리면 의미가 있는 시간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죽음 이전까지로 한정된 채 뻗어 있는 나의 시간은 내가 무언가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다. 그 시간은 단순히 타이머로 잴 수 있는 시간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 시간은 내가 '존재'하는, 그런 시간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단번에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을 거이다. 오히려 죽음 이전까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쭉 걸어가면서 가슴속에 품고 오랫동안 곰곰이 의미를 생각해볼 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20세기 독일의 철학자 힐데브란트는 가치와 관련한 무감각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한다. 그는 윤리적인 옳고 그름이 단순히 형식적으로 규칙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에 있다고 보지 않았다. 저자는 힐레트란트는 배운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적으로 윤리적인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단순히 옳은 행위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옳은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가치에 대한 무감각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선한 삶에 있어서 심각한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다.



"힐레브란트는 가치와 관련한 무감각에 다양한 종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은 많은 윤리적인 가치를 잘 느끼지만 특정한 가치에 대한 감각만 결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온화함에 대해서는 좋은 감각을 가졌지만, 진실함에 대해서는 무딘 사람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 사람은 평소 다른 사람을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좋은 모습을 보이겠지만, 거짓말을 하는 데 있어서는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사실 대부분 사람이 이런 식으로 몇몇 부분에서는 모자란다. 누구나 몇몇 가치에는 무디다. 따라서 단순히 몇 가지 가치에 감각이 없다고 해서 인간의 범위를 벗어난 악한 존재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보통 우리가 악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가치에 총체적으로 무감각하다. 만약 어떤 악인이 한 가지 윤리적인 가치에 대해서만이라도 깊은 감각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 안에서 마지막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가 악마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 안에서는 무기력함을 넘어서는 능동적인 힘이 발견된다. 그들은 악을 행하는 것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며, 악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다. 힐데브란트는 이들은 가치에 전적으로 무감각한 게 아니라, 가치의 '내용'은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가치가 가진 '힘'의 측면만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능동적으로 어린아이나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은 생명의 가치가 지닌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 사람은 생명의 가치에 무관심하기보다는 적대심을 품는다. 그 이유는 그가 생명이 가진 힘에 대해서만큼은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며 이 세상의 모든 의미가 창출되는 근원의 역할을 한다. 이렇게 생명이라는 가치 안에는 그 고유의 내용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힘이 있다. 보통 사람은 생명의 내용과 힘을 균형 있게 모두 이해하기에 생명의 힘이 부정적인 힘이 아니라 선한 힘이라는 걸 안다. 따라서 우리는 생명의 힘 앞에서 적대감을 느끼기보다는 경외감을 느낀다. 

반면 오로지 생명이 가진 힘의 측면만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 힘이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느낀다. 그에게는 어린아이의 웃음소리나 고양이의 여유로운 몸짓 같은 것이 자신 안의 평정을 깨뜨리는 위협으로 다가온다. 마치 저 멀리서 정체불명의 사람이 접근해올 때 우리가 위협을 느끼듯이, 생명의 내용에 대한 이해 없이 오로지 힘만을 느끼는 사람은 그 힘이 자신을 파괴해버릴지도 모른다고 느낀다. 정리 강박이 있는 사람에게는 방바닥에 흐트러진 옷이 자신의 삶을 뒤흔드는 힘으로 다가오듯이, 가치의 내용 없이 오로지 힘만을 아는 사람은 선한 가치에도 까무러치는 반응을 보인다. 그는 그 가치가 자신의 존재를 위협한다고 느끼며, 얼른 그것을 통제 아래 복속시켜야 한다고 느낀다."



저자는 미국의 철학자 존 호글랜드가 "인간적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무언가를 원하는 능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라는 말에 집중한다. 호글랜드는 기계가 인간처럼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무언가 원하는 능력을 갖추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인공지능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어떤 사건도 그 자체로는 절망적이거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희망적일 수 없고, 오직 나의 삶이라는 전체와의 연관 속에서만 사건은 슬프거나 기쁠 수 있다.



"기계에는 아직 삶이라는 전체가 없다. 그렇기에 기계는 아직 삶 속에서 무언가를 원한다는 게 뭔지 이해할 수 없고, 인간의 생활과 정신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기계에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알파고는 가장 위대한 바둑기사에게도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알파고는 승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 승리가 어떤 의미인지, 상대를 이긴다는 게 어떤 느낌을 가져다주는지, 피나는 노력과 순간의 번뜩임으로 자신을 극복하고 창조적인 수를 두는 게 바둑기사의 삶을 어떻게 빛나게 하는지, 그것을 알파고는 이해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