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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 최진석의 자전적 철학 이야기

by 우먼링크 2023. 12. 22.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는 철학자 최진석의 자전적 철학 이야기예요.

이 책은 2020년 2월 17일 저자의 회갑 날로 시작하여 저자가 태어난 장병도라는 섬으로 거슬러가고 있어요.

육십갑자 한 바퀴를 죽지 않고 돌았으니, 다음 한 바퀴를 어떻게 돌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유치환 시인의 「생명의 서」 에서 '또다시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배우기 시작하라.' (6p)라는 답을 얻었다고 해요. '원시의 본연'을 찾는 여정으로 출생지인 장병도를 제자 김재익과 이민규와 함께 갔고, 그곳에서 아버지의 제자였던 할머니와 그의 아들을 운명적으로 만났으며, 아버지가 장병분교에 고이 묻어둔 태를 60년만에 찾아 깊은 절을 올렸다고 하네요. 철학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멋드러진 설명 대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모든 걸 보여주고 있어요.

저자의 아버지는 하의초등학교 장병분교로 발령이 나자 어머니와 함께 섬 생활을 시작했고, 섬에 들어온 지 1년여 만에 학교 관사에서 아들을 낳았대요. 아들이 네 살 정도 되었을 때 내륙 함평으로 오게 되었고, 그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촌에 있기 싫어요. 광주로 보내주세요." (19p)라고 말했대요.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광주로 전학을 보내주었대요. 나이들면서 점점 아버지는 현실적인 성공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셨고, 아들에게 고시를 보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아들은 철학을 먼저 해야 고시를 잘 붙는다는 핑계를 댔어요. 아버지가 그토록 원했던 현실적인 성공이란 아들이 판검사가 되는 것인데 그 길로 가지 않았으니 아버지로서 서운하셨겠지만 아들 역시 아버지가 현실적인 성공 너머에 있는 의미가 가치를 살피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고... 평생 아버지와 어색했던 아들, 그 아들에게 아버지가 남기신 마지막 말씀은 "나 인자 그만 먹을란다" (53p)였다고 해요. 아버지는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혼자, 자신이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셨고, 아들에게 그 말을 남긴 후 8일간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떠나셨대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정해진 강의를 하러 함평농협 장례식장을 나섰는데, 묵묵히 걷다가 불현듯 어디선가 아버지의 낮고 느린 말투가 들렸대요. 사실 이 부분을 읽다가 뭔가 번쩍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니 강의를 들어보고, 니 글을 읽어보먼, 가끔 죽음에 대해서 이리저리 말도 잘하드만. 나는 살기 바뻐서 죽음 같은 것은 생각도 못했다. 거그다가 철학이 뭔지도 모르니 죽음을 놓고는 한마디도 할 줄 모른다. 근디 말이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죽을 수 있다. 뭔지 몰라도 나는 이렇게 죽을 줄 안다."

한마디가 더 들렸다. "너는 어쩔래?"   (56p)

나이들수록 장례식장에 갈 일이 많아지고, 죽음 앞에 예외란 없음을 깨닫게 되네요. 아직 살아갈 날들이 많다고 여겼던 건 어리석은 착각이었어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만 고민하다가 삶과 맞닿은 죽음을 느낄 때, 그 순간 가장 진지한 철학자가 되는 것 같아요. 삶과 죽음에 관한 질문들, 결국 우리 모두가 찾아야 할 답이겠지요.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지혜를 얻고 싶네요.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한평생을 산다는 것은 책받침 두께 정도의 얇은 틈새를 

천리마가 휙 지나는 것과 같다. 홀연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