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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야기 - 칸트(1724-1804)

by 우먼링크 2023. 12. 22.

『철학 이야기』는 윌 듀런트(1885~1981)가 11여 년의 준비과정을 거쳐 저술한 세계적 베스트 셀러이다. 이 책은 어렵게만 여기고 있는 철학을 일반인들에게 확산시키며 역사와 철학의 대중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서양 철학의 흐름과 시대별 배경과 사상, 그리고 대표적인 철학자들에 대한 개념과 이해를 조건으로 한다. 따라서 이 책은 철학서의 안내자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보다 심층적인 철학 공부를 위한 훌륭한 입문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전문 철학서적이 아니다. 그럼에도 여기에서 소개하는 이유는 방대한 전문 철학서는 읽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워 삶과 연계한 철학 이념을 체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서양 철학사의 주요 사상과 삶의 접목을 통한 인문 지식의 함양을 위한 방편으로서 이 책은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유용하다. 물론 이 책을 통해 미흡한 부분은 해당되는 전문 철학서을 겸용 연구함으로써 전문성을 보완할 수 있다.


따라서 플라톤에서부터 근대 철학자까지 그들의 사상과 저서를 그들의 성장과정과 연계시켜 완벽하게 재구상한 『철학 이야기』를 통해 주요 철학자와 사상을 개관함으로써 철학적 이념 틀을 조각해보는 것에 의미가 있다. 

​칸트

그 첫째 이야기를 칸트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서양 철학사에서 칸트의 비중은 절대불가의 영역이고, 현대 철학으로 이어지는 모든 관념론의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규칙동사 중 가장 규칙적이었다고 하는 프로이센 출신의 칸트는 60여 년 간 교육자였다. 그는 중간쯤의 재능을 가진 학생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바보는 도와 줄 방법이 없고, 천재는 자기 힘으로 해 나간다고 그는 말했다. 몸이 약해서 평생 스스로 섭생법을 만들어 취했던, 키가 160cm도 되지 않은 칸트는 매일의 산보에서는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으며,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경건파 청교도 교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엄격한 종교적 실천을 강요받은 것에 반발을 느껴 성인이 된 후 한 번도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라이벌 관계였던 흄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칸트는 당시 회의주의적 풍조의 시대를 돌파했다. 1781년, 그가 15년의 구상과 집필로 탄생한 『순수이성비판』이 완성된 때는 57세, 아주 느리게 성숙한 칸트에 의해 철학계는 정복되었다. 

 

칸트는 전문적 철학자들만의 책이다. 너무나 방대한 분량 때문이다. 칸트는 19세기 사상을 지배했지만 플라톤 이후 그들만의 세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서양사는 플라톤-기독교-칸트로 연결되는 사상의 직선으로 관통된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기독교의 교의 사상으로 겉모양을 바꾸었고 다시 칸트의 이성으로 새출발한다. 칸트는 서양 문화의 종결자이고 그 이후 더 이상의 분란은 없었다. 그러므로 칸트는 누구나 읽어야 하고 난해하지만 이해해야 한다.

 

칸트의 철학은 이성에 대한 본질 비판이다. 그동안 서양의 종교적 신앙은 사회제도와 인간의 마음속에 너무도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이성의 도래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볼테르, 베이컨, 스피노자에 이르기까지 이성에 대한 믿음은 공고하게 기반을 구축해갔으나 여전히 종교적 신앙의 힘을 무력화 시키기에는 한계를 보였다. 이성에 대한 비판은 이러한 배경을 등에 업고 나타났으며 여러 철학자들에 의해 시도된다.

 

신학자들은 신학상의 핵심 관념, 즉 선악이나 신에 대한 본유 관념이 사람들에게 선천적인 것임을 입증함으로써 신앙과 도덕의 강화를 이끌어내려 했다. 이에 대해 로크는 인간의 모든 지식은 경험으로부터, 그리고 감각을 통해 획득됨으로써 우리는 단지 물질만을 알 수 있다는 유물론적 철학을 채택했다. 그러나 버클리 주교는 로크의 인식 분석이 오히려 물질은 정신의 형태로만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반박을 펼친다. 즉 어떤 사물에 대한 인식은 그 사물에 대한 감각이고, 이 감각으로부터 생긴 관념이다. 물질은 정신적 상태이고, 우리가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유일한 실재는 정신이라고 논박했다.

 

데이비드 흄(1711-1776)은 우리는 물질을 아는 것과 동일한 방법을 통해서 정신을 안다고 말함으로써 버클리 주교의 정신을 철저히 파괴했다. 우리가 지각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은 지각의 내부적인 것이며 결코 정신이라는 실체를 지각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은 하나의 실체를 갖고 있는 하나의 기관이 아니며 일종의 관념들에 대한 추상적인 명칭일 뿐이다. 지각, 기억, 감정이 정신이며 사고 과정의 배후에 알아볼 만한 영혼이 있는 것은 아니다. 흄의 재반박으로 이성과 정신에 대한 철학은 혼돈 속으로 빠져 들었다. 흄의 행보는 이에 그치지 않고 영원의 개념을 무산시켜 정통 신앙을 파괴하였고, 나아가 법칙의 개념을 해체함으로써 과학마저 파괴하려고 하였다.


법칙은 온갖 사건이 복종하는 영원하고 필연적인 섭리가 아니라, 우리의 다양한 경험의 정신적 총괄이고 집약일 뿐이다. 법칙은 사건의 연속 속에서 관찰된 관습이고, 관습에는 필연성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수학 공식은 필연성을 갖고 있으며 선천적으로 변하지 않으며 진실하다. 술어가 주어에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은 수학과 직접적 경험에 엄격하게 한정되어야 하며, 법칙으로부터의 검증되지 않은 연역을 믿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흄의 주장으로 정통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인식론적 전통은 이미 종교의 지주가 아니게 되고 말았다. 비물질적 정신과 불멸의 영혼은 그 존재 가치를 위협 받았다. 칸트는 흄의 『인성론』을 읽고 충격에 빠져, 아무런 의심도 없이 종교의 본질과 과학의 기초를 받아들이던 독단의 잠에서 깨어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과학과 신앙을 구제하기 위한 과제가 칸트 앞에 던져졌다. 
  

이성은 유물론 쪽을 향해 가고 있다는 계몽주의의 주장에 대하여 버클리는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박을 했고, 흄에게서 같은 증거에 의해 정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역습을 받았다. 계몽주의의 유물론과 무신론과 투쟁을 벌인 루소(1712-1778)는 지성보다는 감정이 우월하다는 거을 자신의 소설을 통해 입증한다. 루소는 『에밀』에서 이성은 신과 영생에 대한 신앙에 반대하더라도 감정은 전적으로 찬성한다면서 본능을 신뢰한다. 무신론의 어둠에서 벗어나는 길을 탐구하며 초감각적 문제에서는 감정이 이론이성보다 우월하다고 선언한다. 여기가 칸트가 등장하는 지점이다. 버클리와 흄의 관념을 루소의 감정과 결합하여 종교를 이성으로부터 구출하는 동시에 과학을 회의주의자로부터 구출하는 것이 칸트의 사명이 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