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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주거

비혼여성 세입자 릴레이 인터뷰 ① 대학생 진현이 노숙을 하게 된 이유

 

집은 꼭 필요하지만, 살기 위해 사야하는 것 중 가장 비싸다. 그래서 우리는 매달 월세만으로도 생활고를 겪고, 전세 대출금을 생각하며 직장에서의 모욕을 견디고, 지금보다 십년 뒤가 더 불안하다. 이렇게 뼈 빠지게 유지하는 집은 나쁘거나 썩 좋지도 않으면서 계속 탈이 나고 대부분의 집주인은 그걸 모른척한다. 그래서 세입자라 쓰고 비적정주거 생존자라 읽는다. 복지예산은 점점 늘고 있는데 이상하게 여전히 가족 말고는 비빌 언덕이 없어 보이는 2014년의 한국.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에서 비빌 언덕이 없는 비혼여성 10명을 만나 비적정주거 생존자로 살아왔던 집 역사를 인터뷰했다

 

 

 

 

진현은 독립 5년차이다. 2009년에 대학 진학을 하면서 서울에 왔다. 어떤 딸들이 그렇듯 진현은 가족과 화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모님께 의지하는 마음이 크지 않다.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도 않으시다. 이유야 어쨌든 진현은 대체로 가족의 원조 없이 집 문제를 해결해 왔다. 지금까지 많은 일을 겪었다.

 

 

 

독립 첫해, 학교원룸에서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방을 거쳐 2평 쪽방까지

 

처음에는 ‘학교원룸’에 살았다. 학교에서 원룸 건물을 임대해 학생들에게 보증금 없이 30만원 정도의 월세를 받고 빌려 주는 기숙사 개념의 방이었다. 진현의 방은 2인실이었는데 룸메이트는 학교에서 임의로 배정했다. 진현은 ‘친하지 않은 사람이랑 칸막이도 없는 곳에서 같이 숨 쉬는 게 어색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두 달 만에 그곳을 나왔다.

 

다음 다섯 달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태프로 일하며 그곳 빈방에서 지냈다. 낡고 지저분했지만 주거비가 안 들고, 독립된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곳에서 ‘무슨 일만 있으면 불러서 딸딸 긁는’ 사장을 버티다가 다시 집을 옮겼다.

 

 

 

진현의 세번째집

대학가에는 이런 2평짜리 개조식 방도 버젓이 '집'으로 임대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다음 여섯 달은 2평짜리 방에서 살았다. 월세 수입을 얻을 목적으로 주택을 개조해 작은 방들로 나눈 집이었다. 보증금이 없는 처지에 그나마 감지덕지였지만 현관문이 잠금 장치가 없는 ‘방문’이라 걱정이 되긴 했다. “그냥 힘을 줘서 열면 열리거든요. 만약 저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고 문을 열거라고 생각하면 집에서 절대 편안하게 있을 수 없죠.” 이때 진현은 옆방 남자에게 ‘스토킹에 가까운 추근거림’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첫 1년을 났다. 

 

 

 

700에 60짜리 집에는 직각이 없다.

 

2010년 3월. 진현은 보증금이 있는 집을 처음 얻었다. 서울에서 겪은 네 번째 집이다. 친구가 가진 보증금 200만원과 진현의 2평짜리 방에 와보신 어머니가 ‘마음이 짠해서’ 원조해주신 500만원을 합쳤다. 월세는 각자 30만원씩 60만원까지 부담하기로 했다. 집을 구하러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러다 결국 친구와 싸웠다.

 

“그때 봤던 집들이 두 종류였어요. 신축 원룸이라 엄청나게 좁거나, 그렇게 좁진 않지만 엄청나게 낡았거나. 둘이 사니까 낡아도 너무 좁지 않은 쪽으로 봤는데, 그 친구의 표현에 따르면 집에 직각이 없다고 그랬어요. 마름모, 오각형... 집이 아귀가 안 맞는 거예요. 저는 이미 집을 구해본 적이 있으니까 700에 60으로 그렇게 좋은 집을 구하긴 어렵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친구는 실제로 집들을 보니까 너무 심란했던 거죠. 볼 때마다 어휴 집이 이렇다… 집이 이렇다… 계속 실망을 하면서. 그때가 여름이라 엄청 땡볕이었는데 걸으면서 또 실망을 하는 소리를 듣다가 제가 울컥한 거예요. 그래! 집이 다 이래! 이렇다고! 받아들이라고 그냥!

 

낡은 집들 중에서 그나마 나은 편인 집을 그래도 구했다. 그 집에서 처음으로 집주인과 싸웠다. 수도세가 5만원이 나와서 수리를 요청했지만 집주인은 '너희가 매일 씻어서 그렇다'며 모른 척 했다. 계속 요청을 하자 직접 와서 이것저것 점검을 했지만 다음 달 수도세는 여전히 5만원. 넉 달을 실랑이를 하다가 진현은 혹시나 싶어 친한 교수님을 대동했다. 교수님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 수도 이야기를 하자 집주인은 태도를 바꿨다. 당장 출장 수리기사를 불렀고 누수는 깨끗이 고쳐졌다. 세입자인 것도 서러운데 나이 어린

여자라고 더 무시당하는 게 무엇인지를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개조식 집’이라는 헬게이트

 

2010년 9월부터 친구와 따로 살게 되면서 진현은 다시 이사를 했다. 다섯 번째 집.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0만원이었다. 이 집에 대한 진현의 첫마디는 이랬다. “헬 게이트를 열었어요.” 그 집은 ‘개조식 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집’이었다. 방 한 칸 앞에 컨테이너 박스를 붙이고 거기에 가스렌지를 놓아서 부엌을 만든 집이었다. 컨테이너 박스와 원래 집의 벽 사이 이음새가 좋지 않아서 그 틈으로 해충과 쥐가 드나들었다.

 

 

 

진현의 다섯번째집

개조식 집은 세입자의 건강까지도 위협한다. (@한국여성민우회)

 

 

그 집은 ‘건강이 상할 정도의 집’이기도 했다. 사이사이로 찬기가 스며들어 겨울에는 너무 추웠다. 바닥에는 닦아도 닦아도 다시 떨어지는 그을음 같은 것이 항상 있었다. 또 1층인데 햇빛이 전혀 들지 않았다. 진현은 그 집에 살면서 눈도 나빠지고, 기관지도 안 좋아지고, 기분도 우울해졌다. 생활 리듬도 망가졌다. “잠을 깰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빛이 없으니까 사람이 못 일어나더라고요.”

 

 

 

LH의 대학생 전세임대 심사에 30번 탈락하다.

 

2011년 겨울에 다섯 번째 집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LH에서 시행한 ‘대학생 전세임대’ 덕분이었다. 그런데 그 ‘대학생 전세임대’로 집을 구하기가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다.

 

“ 제가 집을 보고나서 LH에 심사를 올려요. 그럼 LH가 자체 기준으로 심사를 해서 이 집은 얼마까지 지원 가능하다고 알려줘요. 그런데 그 감정가가 실제 전세금보다 대부분 적은 거예요. 집은 전세 5500인데, 감정가가 3500이 나오면 2000만원이 모자라잖아요. 그럼 계약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한 건물에 주인이 같은 세입자가 여럿 있으면 다른 집 집세를 다 적어내야 됐어요. 집주인들이 당연히 싫어하죠. 또 그 심사가 2~3일 걸렸거든요. 기다리는 것도 집주인은 싫어하고, 심사 하는 사이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이미 계약이 되기도 하고. 그리고 불법 개조를 한 건물이면 애초에 심사에서 탈락이에요. 서울에 불법 개조를 안 한 집이 거의 없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명륜동에서 종로5가까지 내려오면서 거기 있는 전세 매물이란 매물은 거의 다 봤는데도 LH에서 허가가 나는 집이 없었어요. 거의 30번은 빠꾸를 먹었어요.

 

매일 새 집을 보고 또 심사를 넣는 동안 계약 만료가 다가오고 있었다. 진현은 집주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몇 달 정도만 더 살 수 있을지를 물었고 집주인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집주인은 간단하게 말을 바꾸었다. 벌써 다음 세입자를 구했으니 기한에 맞춰 나가라는 것이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LH 대학생 전세임대제도 홍보물 중 일부

진현에겐 거의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이 제도를 이용하기 위해 너무 많은 일을 겪어야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보증금을 지키기 위한 지난한 싸움, 그리고 깨진 마음만이 남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집주인은 갑자기 보증금 이야기를 시작했다. 월세를 덜 냈으니 그걸 빼고 보증금을 내주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진현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불안정하게 생활비를 벌고 있었고 월세가 한 두달 밀려 한 번에 내기도 했지만 안 낸 적은 없었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진현은 마음이 급해졌다. 보증금을 다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누군가에겐 ‘그래봤자 100만원’이겠지만 진현에게는 1, 2만원이 귀했다. 부동산과 법률구조공단을 찾아 다녔다. 상황은 나빴다. 어쩌다보니 진현은 그 집에 전입신고를 안 한 상태였던 것이다.

 

임대차보호법은 세입자에게 ‘대항력’을 부여해 세입자를 보호한다. ‘대항력’은 집주인이 바뀌거나 집이 경매에 넘어가도 세입자가 계약 기간 동안 거주 할 수 있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손실 없이 돌려받을 수 있게 해주는 권리다. 단 대항력은 집을 ‘점유(이사)’한 뒤 ‘전입신고’를 해야 생긴다. 전입신고를 안 한 진현은 법적으로 따져도 보증금을 보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은행에 갔다. 특정 계좌 이체 내역만 뽑을 수는 없어서 2년치 이체 내역을 다 뽑았다. 일일이 보며 낸 월세를 체크하고, 정리하고, 또 집주인을 만나 실랑이를 하고. 집주인은 이제 진현이 공과금을 안내서 대신 낸 적이 있다며 그걸 빼고 보증금을 주겠다고 하고 있었다. 험한 소리가 오갔고 진현은 지쳐갔다. 그즈음 진현은 옆집 중국인 유학생과 대화를 하다 집주인이 상습적으로 보증금을 떼먹는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국인 유학생도 이사를 가면서 역시 이런저런 이유로 보증금을 다 돌려받지 못했고, 외국인이다 보니 진현처럼 따지지 못하고 그저 떼였다는 것이다.

 

“멘탈이 산산이 부서졌어요. 집주인하고 싸우는 것도 이제 지치고. 보증금만 다 돌려받을 수 있으면 나가라는 날짜에 그냥 나가야겠다 했어요. 다음 집은 안 구해졌지만 노숙을 하더라도 그냥 그래야겠다. 통보받은 이사 날에 짐을 반쯤 싸놓고 집주인을 기다렸어요. 혹시 몰라서 키가 190인 고향 친구를, 남자애를 불러 놨고요. 보증금 받으면 짐을 빼겠다고 하니까 집주인은 짐을 빼면 보증금을 주겠다고 하고. 각서를 쓰면 주겠다고 하길래 영수증을 써줬는데 그것만 쏙 채가면서 돈을 안주려고 하고. 경찰을 부른다 어쩐다 그날도 난리를 치는데, 그 고향 친구가 가만히 있다가 그때 딱 일어났어요. 그 할아버지를 탁 막으면서 ‘이러지 말고 그냥 주시죠.’ 한 마디를 했어요. 그랬더니…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는 거예요.     


 

노숙을 하다.

 

집주인은 그렇게 진현에게 세상이 ‘나이 어린’ ‘여자’ ‘세입자’를 어떻게 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많은 비혼여성들이 집을 구하고 또 살아가는 동안 공인중개사나 집주인에게 ‘세입자’이면서 ‘비혼여성’이라는 이중 약자 취급을 당한다. 내 존재 자체가 약점이 된다는 것을 감지할 때, 그 무력감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비애와 분노로 존재를 잠식한다. 진현은 지치고, 마음을 다쳤다. 그리고 노숙이 시작됐다,

 

“나머지 짐을 싸서 콜밴을 불렀어요. 친구가 일하는 곳 창고에 짐을 맡기고, 다시 혜화로 돌아왔어요. 그때 제가 장학금 신청 때문에 부모님께 받을 서류가 있어서 부탁을 해놨는데 집주소로 받을 수가 없잖아요. 근데 부모님께는 사정을 말하지를 못했어요. 그때 사이가 안 좋았거든요. 그래서 우체국에 그 서류를 찾으러 갔던 거예요. 그날, 버스에서 딱 내렸는데. 그때 기분이…. 이제 집이 없는 거잖아요. 당장 오늘밤에 어디서 잘 수 있을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 혜화동 로터리에서 우체국으로 우편물을 찾으러 가면서 엉엉 울었어요. 아, 나 이제 어떡하지?”

 

방학이라 자취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고향에 내려가 있어서 신세 질 곳도 마땅치 않았다고 한다. LH에서 제시한 신청 기간 내에 심사를 통과하는 집을 못 찾으면 자격 자체가 무효가 되기 때문에 진현은 고향에 가 있을 수도 없었다. 낮에는 계속 새로운 집을 알아봐야 했던 것이다. 하루는 PC방, 하루는 찜질방, 술집에서 밤을 새기도 하고 벤치에서 자기도 했다. 공원 벤치는 으슥해서 사고가 생길까봐 대로변의 벤치에서 잤다. 12월, 한겨울이었다.

 

진현의 노숙은 3주간 계속됐다. 그 3주의 노숙은 그해가 첫 시행이었던 ‘대학생 전세임대’ 제도의 허점과 ‘집보다 더 문제였던 집주인’의 합작이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단지 공무원들의 시행착오나 특별히 나쁜 집주인 개인을 탓 할 문제만은 아니다. 진현의 노숙은 현재 주거복지제도의 한계와 세입자의 열악한 사회적ㆍ법적 지위가 겹쳐진 주거 사각지대에 누군가 처했을 때, 이 사람이 비공식적 사회안전망인 가족과 친지를 동원할 수 없다면 결국 어디에서 잘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인 것이다.

 

 

 

“지금 집주인은 정말 좋아요.”

 

 

 

진현의 여섯번째집

현재 진현이 사는 집. 처음으로 갖게 된 안정적인 집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이런 시간을 거쳐 진현은 지금 처음으로 안정적인 집에 살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심사를 통과한 집이 등장한 것이다. 지금 집은 집주인도 아주 좋다고 한다. 무엇이 좋냐고 물었더니 진현의 대답은 특별할 것도 없는 그저 상식적인 집주인을 묘사하고 있었다.

 

“수리 때문에 연락을 하면 바로 고쳐줘요. 또 본인이 어설프게 고치는 게 아니라 기사를 불러 제대로 고쳐주고요. 한번은 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자는데 창문을 타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집주인한테 말을 했더니 비 그치자마자 바로 공사를 해줬어요. 누수 공사라 꽤 큰 공사였는데 도요. 그 달은 사는 게 불편했겠다며 월세 10만원도 안 받았어요. 그러다 겨울에 결로가 심해서 곰팡이가 많이 폈어요. 건물 외벽에 금이 있으면 결로가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집주인한테 외벽 수리가 잘 안된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랬더니 외벽 점검하는 공사를 다시 해줬어요. 그 뒤론 결로도 없고 곰팡이도 안 생겨요.”

 

릴레이 인터뷰를 하면서 수리를 둘러싼 집주인과의 분쟁이 세상에 대한 신뢰감과 일상생활 자체를 어떻게 흔드는 지를 수도 없이 들었다. 사례가 끝도 없었다. 그 인터뷰이들이 원했던 건 단지 상식이 지켜지는 것뿐이었다. 집에 곰팡이가 피거나 물이 새지 않기를, 햇빛이 들기를, 건강이 상할 정도의 해충이 끓지 않기를, 집안은 적어도 밖보다는 덜 덥고 덜 춥기를, 그리고 집에 탈이 나면 집주인이 제때에 수리를 해주기를, 예의바르게 대해 주기를, 어린 여자라고 무시하지 않기를, 손익 계산에 따라 말을 바꾸며 관계에 대한 신뢰를 깨트리지 않기를.

 

진현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모의 원조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독립한 여성이 서울에 자기 공간 하나를 마련하는 것이 정말 이토록 파란만장해야 하는가 싶어 마음이 아팠다. 5년 동안의 생존기를 다 듣고 나니, 지금 살고 있는 집이 건물도 집주인도 괜찮은 집이라는 사실이 듣는 나에게도 위로가 될 지경이었다. ‘대학생 전세임대’로 얻은 집이라 2년 뒤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지금은 오랜만에 집 때문에 비참하지 않은 시절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진현에게 집에서 가장 소중한 공간이 어디인지를 물었다. 진현은 부엌이라고 대답했다.

 

“안정적인 집에 살게 되면서. 부엌이 소중해졌어요. 요리를 해먹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친구들을 불러서 대접하는 일도 잦아졌어요. 하하. 아마…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아요.”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LH 대학생 전세임대라는 계단이 있어 ‘헬게이트 집’에서 나올 수 있었듯이, 2년 뒤 이사를 할 때도 진현이 밟을 수 있는 다음 계단이 있었으면 좋겠다. 다음 집주인도 ‘좋은 집주인’이면 좋겠지만, 애초에 그런 행운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게 세입자의 사회적ㆍ법적 지위가 탄탄해지면 좋겠다. 그래서 2년 뒤 다음 이사를 한 뒤에도 진현이 여전히 소중한 부엌에서 친구들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사소한 일상을 보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 이 기획기사는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도 동시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