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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머프의영화관] 당신의 세계는 그러했군요 : <멜랑콜리아>(2011)

당신의 세계는 그러했군요 : <멜랑콜리아>(2011)

 

 

• 스머프 (여는 민우회 회원)

 

 

얼마 전 지인을 만나 밥을 먹다 최근 자살한 두 군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태평하게 그 정도로 심각했다면 병원에 입원이라도 시켜야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잠시 머뭇하던 지인은 자신의 경험담을 꺼냈다. 사실 그 역시도 군대에서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으며, 목숨이 상당히 위험할 정도의 행동을 했다고 한다. 때문에 그는 군병원에서 정신과 의사와 병영생활상담사의 상담을 받게 되었다. 그만하면 운이 좋은 사례가 아닌 가 했지만, 그는 딱히 그런 것도 아니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상담을 받던 그 때가 그는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건조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상담사 앞에서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야했다. 스스로도 적합한 말을 찾을 수가 없어 답답했지만, 상담자가 정말 무미건조한 말로 그의 고통을 옮길 때, 그는 너무도 슬펐다고 한다. 가령 그가 수십 분을 자기 고통에 대해 설명하면 상담자는 그러니까, 죽고 싶었다는 거죠?’라고 답하는 식이다.

 

그의 그런 고통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 뒤 나 또한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의 감정적 부침을 겪은 탓이다. 내가 지인을 부분적으로나마이해했다고 말하는 건 이번 부침이 이전과는 상당히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왜 힘든지 도통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더불어 이 고통이 어떠한 것인지 설명할 길이 막막했다. 나는 이 부침이 수반하는 증상은 설명할 수 있었지만, 정확히 이 부침의 실체를 한 단어에 집약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공기가 나를 무겁게 누르는 느낌이야같은 추상적인 말 뿐이었다. 이런 말을 주변인들이 이해했을 리가 만무했다. 나는 어느 순간 설득을 포기했다. 하지만 답답한 건 여전했고, 거기에 더해 외로움까지 느껴졌다. 나는 사람들을 내 자리로 데려와 여기선 어떻게 느껴지냐고 묻고 싶었다. 주변에서 누군가 웃는 소리만 들어도 울화가 느껴질 때쯤, 나는 외출을 삼갔다.

 

 

스스로의 감정을 납득시킬 수 없는 주변 사람들과의 불화. 영화 <멜랑콜리아>속 저스틴도 비슷한 상황에 놓인 캐릭터다. 사실 정도로만 치자면 그녀의 상황이야말로 최악이다. 저스틴이 우울에 시달리는 현장은 다름 아닌 그녀의 결혼식장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녀에겐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백기를 흔들 여유 따윈 허락되지 않는다. 이 같은 딜레마는 영화의 프롤로그에서 여실히 표현된다. 이 장면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팔과 다리를 나무 넝쿨이 칭칭 감는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도 모자랄 순간이지만, 그녀는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결국 결혼식의 중간, 그녀는 식장에서 몰래 빠져나와 짧은 잠을 청한다. 그리고 기어코 그녀를 다시 데리러온 클레어에게 저스틴은 말한다. ‘잿빛의 엉킨 실타래를 지나는 것 같아.’ 우울의 감정이 잿빛의 엉킨 실타래로 표현 된 점도 주목할 만하지만, 이것을 지나는 것 같다는 표현도 눈에 띈다. 엉킨 실타래에 짓눌린 것만으로도 미칠 지경인데, 그녀는 주저앉지 못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움직여야 한다.

 

데니언 리더는 그의 책 <우리는 왜 우울할까>에서 이 같은 상황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멜랑콜릭 주체들은 사회와 집단에서 남들과 함께 살아가야하지만 다른 한편 절대 고독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 말의 의미는 저스틴과 주변인을 볼 때 좀 더 명확해진다. 언니인 클레어는 빼곡히 적힌 결혼식 절차를 들고 그녀가 따라야 할 절차를 알려준다. 저스틴의 형부는 내내 결혼식에 든 비용을 말하며, 그녀가 행복하기를 사실상 종용한다. 하객으로 참석한 저스틴의 상사는 그 와중에 그녀가 해야 할 업무를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남편은 나이든 저스틴과 그가 자리할 농장의 사진을 내민다. 배려와 의무를 가장했지만 일상엔 그녀가 수행해야할 역할이 빼곡하다. 이 세계에는 모든 것이 확실하고, 계산되어 있으며, 확고하게 의미화 되어있다. 저스틴의 우울은 자리 할 곳이 없는 것이다. 당연히 저스틴의 세계는 분열하고 불화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리더가 인용했듯 멜랑콜릭들은 동시적인 두 세계 속에서 몽유병을 꾸는 것처럼살아갈 수밖에 없다. 결혼 식 내 저스틴이 잠에 취한 것처럼 보인다면 이 때문이지 않을까.

 

 

저스틴의 결혼식 에피소드는 우울증자들이 겪는 고통을 여과 없이 전면화 한다. 그렇다면 하나의 의문이 남는다. 클레어의 이야기를 다룬 두 번째 장은 왜 필요한 것일까. 영화는 두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첫 장의 제목은 저스틴이고 두 번째 장의 제목은 클레어다. 이 장은 클레어가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행성 멜랑콜리아를 두려워하고, 결국 그녀의 두려움대로 지구가 멸망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제목이 멜랑콜리아이고 첫째 장이 우울증을 제대로 다루었다면, 과연 두 번째 장은 왜 필요한 것일까.

 

이 질문을 잠시 접어두고 두 번째 장에서 다루는 종말을 살펴보자. 교외의 저택에서, 자본과 과학이라는 근대의 세례를 받으며 일상을 사는 이들, 단선적인 역사와 진보가 익숙한 이들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망연자실한 것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 이후에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깔끔한 종말, 첫 번째 장에서 저스틴이 말했던 완벽한 (nothing)’가 아닐까. 때문에 클레어는 다른 행성에도 생명이 존재할지 모른다.’ 며 스스로의 죽음이 아니라 로서의 종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새를 보인다. 심지어 이 로 돌아감은 혜성이 충돌하는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진다. 이를 해석하고 의미화하고 옳고 그른 절차를 따질 여유 따윈 없다. 종말을 제대로 맞고싶다는 클레어에게 저스틴은 차라리 빌어먹을 화장실에선 어때라고 일갈한다.

 

두 번째 장에서 클레어는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고, 누군가에게도 전달 할 수 없는 망연자실함을 마주한다. 말하자면 첫 장의 저스틴의 위치에 이제는 클레어가 서게 된 것이다. 일례로 첫 장의 저스틴과 두 번째 장의 클레어는 묘한 등치를 이룬다. 첫 장에서 저스틴이 골프 카트를 타고 자신과 불화하는 세계로부터 무력한 탈출을 감행한 것처럼, 종말을 앞둔 클레어 역시 골프 카트를 타고 초라한 도피를 감행한다. 하지만 카트가 멈추는 지점은 정확히 저스틴이 넘지 못하고 좌절했던 지점, 저택을 벗어나는 다리 앞이다. 클레어는 스스로가 원하지 않던 사람(멜랑콜릭과 어린아이)과 상상도 할 수 없던 상황(종말)을 맞이해야 한다. 마치 결혼식에서 저스틴이 그러했던 것처럼. 클레어의 자리에서 저스틴의 우울을 살피던 관객들은 이제 클레어와 함께 저스틴이 서있던 곳으로 이동한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달려드는 멜랑콜리아 앞에서 관객들이 말도 할 수 없는 망연자실함을 느꼈다면, 이들은 성공적으로 첫 장의 저스틴의 자리로 이동한 셈이다.

 

 

이와 같은 유추가 단지 유추에 불과한 것일까. 데니언 리더는 같은 책에서 멜랑콜릭은 자신들의 상황에 불가능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되풀이해서 말하며, 이들이 불가능한 것을 표현할 어떤 방법을 찾는다고 이야기한다. 주지하다시피, 감독인 라스 폰 트리에 또한 우울증으로 고생을 하던 사람이다. 어쩌면 멜랑콜리아라는 제목으로 지구 종말을 이야기하는 기괴한 영화가 탄생한 기저에는, 표현이 불가능한 망연자실함을 전달하고픈 감독의 욕구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영화의 첫 장면에서, 관객들은 우울에 가득 찬 저스틴의 강렬한 눈빛을 마주한다. 앙다문 입술과 강한 응시는, 말로는 할 수 없는 무언가를 당신(관객)에게 전달하겠다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저스틴이나 라스 폰 트리에 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고독에 쌓인 채, 이런 강렬한 응시를 보내는 사람이 꽤나 있을지도 모른다. 소박하지만, 그저 이렇게 답하고 싶다. 당신의 세계는 그러했군요.

 

덧. 얼마 전 자살한 두 병사를 애도합니다. 그 곳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도 외롭지도 않길.

 

  • 바나나아니야 2014.08.26 15:43

    글을 읽지 않고 봤다면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사회와 집단에서 남들과 함께 살아가야하지만 다른 한편 절대 고독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 대목이 와닿네요

    • 스머프 2014.08.26 23:15

      글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맞아요, 저도 글을 쓸 때 그 부분에 많이 마음이 갔었어요. 멜랑콜릭들이 괴로운게 단지 멜랑콜릭이라서가 아니라, 어쩌면 외로움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