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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보육, 현실이가 제도씨에게 묻다

우리에게 수다가 필요해!

릴레이 수다회 '가장 사소한 가장 절실한'은 민우회 회원들의 사회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 중에서 세번의 수다회에서 사회를 맡아주신 은아님의 후기입니다.

 

 

 

 

나는 수다를 좋아한다. 특히 삶이 묻어난 이야기를 좋아한다.

여는 민우회에서 보육수다회를 한다는 얘기에 솔깃했다. 수다회에서 몇 차례 사회를 맡았고, 모인 사람들이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게끔 질문을 슬쩍 던지 게 내 역할이었다. 여는에서 기획을 했고, 준비가 촘촘해서 사실 내가 한 것은 사회라기보다 함께 듣는 거였다. 3시간 남짓 카페 작은 방에 모여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나에게 이런 수다자리는 익숙하다.

주말이면 친구들을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는 것을 즐겨왔기 때문이다. 결혼한 지 3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는 주변의 이야기에는 이런 생활이 반영된 것 일 테다.

 

그런데 수다회에 온 사람 중에는 아이 낳고 처음으로 파트너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와서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 분이 있어서 놀랐다. 우리가 수다회를 갖는 동안 보육교사가 아이들을 돌보아 주지 않는다면 이야기 나눈 것 자체가 곤란했을 사람들. 

 

내 친구들을 떠올려도 그렇다. 아이가 어려서인지 사계절 열감기가 났고, 평일이든 주말이든 아이 돌보느라 분주해서 친구들과의 수다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애가 없는 나는 친구가 보고 싶으면 아이 있는 집을 찾아가야 겨우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은 참 예쁘고 귀여운데 손이 많이 갔다. 밥 먹이고 살펴봐야 하고 이야기 중간 중간 아이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앉아 얘기만 해도 내가 정신이 없고 졸음이 쏟아진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은 참 에너지가 많이 드는 구나 싶다.

 

녹취록 작업을 하면서 MP3 파일에 담긴 수다들에 귀를 다시 기울인다.

그곳에서 만난 누구도, 어떤 선택을 해도, 어렵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어떤 선택도 편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보조 양육자가 있든 없든, 파트너가 평등하게 양육을 분담하든 안 하든, 전업맘이든 취업맘이든.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은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다회가 절실했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기대였다.

 

수다를 통해서 서로 공감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힘들었던 순간들을 꺼내 놓을 때는 마음이 짠하고 미안했다. 화나는 순간을 유쾌한 수사로 풀어낼 땐 웃기고 슬펐다.

특히, 많은 관계 속에서 표현하지 못해 외로웠던 말들이 와르르 쏟아질 때 참 시원했다. 파트너, 직장동료와 상사, 양가 부모, 보육시설과 보육도우미, 이웃집 등등 한사람 한사람과의 관계를 다 생각하다보니 시원하게 털어놓을 데가 없었던 말들. 힘들겠거니, 어렵겠거니 했지만 참, 기가 막힌 이야기들을 들을 때는 어떻게 말을 이어가야할지 몰랐다.

 

나는 노력 절약형 인간으로 살아왔다. 어려워 보이면 그 선택지는 버렸다.

결혼 후에도 아이에 대해서도 육아를 감당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쭉 피임을 해왔다. 파트너와도 때때로 이 문제를 상의했지만, 어떤 결론을 내리진 못했다. 그런데 자궁내막증으로 생긴 난소낭종 제거 수술을 받고 임신을 권유 받고 나니 모래시계를 건네받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곧 서른다섯. 나이 마흔에도 건강하게 출산한다지만 내 몸이 견뎌줄지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무언가 선택을 하는데 시간의 제약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좀 불안해지고 화가 났다.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것 역시 여러 삶의 모습 중 하나이다.

매우 보편적이고, 심지어 국가에서는 출산장려금도 준다. 참 못미더운 사회가 권장하는 삶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결혼을 선택할 때처럼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아이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왜 나는 아이를 내 삶에 포함시키고 싶은 것인지. 수다회가 끝난 지금도 나는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수다를 한껏 풀어내고 간 사람들의 일상은 어떨까. 무엇이 그들이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삶을 꾸려가게 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최근 일을 그만 두고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 면접관들이 묻는다. 결혼을 했는지, 아이가 있는지. 기혼이고 아이가 없다고 하면 아이 가질 계획도 확인한다. 업무 특성상 평일 야간이나 주말 근무를 해야 하는데 가능한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아무 어려움이 없다면 이런 질문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