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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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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5 14:52

이 달 7, 신촌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만여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린 이 축제는, 성소수자들이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고, 서로 연대하는 아름다운 자리였다. 나로서는 이 축제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만을 기억하고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그날 현장에서 축제 반대 시위를 하던 사람들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들은 성소수자들의 코앞에서 혐오발언을 뱉어냈으며, 심지어 길바닥에 드러누워 퍼레이드를 막기도 했다. 이 공공연한 혐오 앞에서 나는 무수한 생각이 들었다. 저들은 왜 저러는 것일까. 저런다고 성소수자가 모두 사라질 것도 아니지 않은가.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세상이 나아지고, 그들 스스로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얼마 후, 엑스맨 새 시리즈를 보았을 때, 나는 그 날의 광경이 다시 떠올랐다. 살아남은 돌연변이들은 수용시설에 갇히고, 저항하는 돌연변이들은 모두 학살당하는 미래, 영화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극단적으로 밀어붙여진 상황을 보여주며 문을 연다. 돌연변이에 대한 탄압은, 잠재적으로 돌연변이를 낳을 수도 있는 인간에 대한 탄압으로 옮겨졌으며, 그런 환경 아래에서 누구도 안전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게 되었다. 영화 속, 돌연변이 사냥기계인 센티넬을 만든 트라스크 박사는 공통의 적(돌연변이)을 향해 전 인류가 뭉쳤을 때, 인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도래한 새로운 미래에는 잿빛 하늘, 폐허가 된 도시,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 등 암울한 광경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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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이런 미래를 막기 위해, 울버린이 과거로 돌아가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이들의 계획은 이렇다. 센티넬 개발의 촉매가 된 사건인 트라스크 박사 살해를 막아, 센티넬 개발을 시작부터 좌초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그래왔듯, 이들의 계획은 순탄하게 흘러가지 못한다. 가장 가까운 동료가 떠나고, 야심차게 학교를 열었지만 이마저도 실패한 찰스는 절망에 잠겨있다. 겨우 힘을 내 트라스크 박사의 죽음을 막으려 해도, 여전히 인간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찬 매그니토가 그와 대립한다. 여기에 동료들을 죽인 트라스크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미스틱까지 이 갈등에 가세한다.


혹자는 이렇게 평한다. 인간에 맞서 자신의 동료를 보호하고,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손을 잡으려는 찰스는 타협주의적인 게 아닌가 하고. 아닌 게 아니라 트라스크를 죽이려는 미스틱을 그는 시종일관 이렇게 설득한다. ‘그들에게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란 걸 보여 줘야해.’ 이는 돌연변이(소수자)’인 우리가 위협적이지 않음을 인간(기득권층)’에게 증명하고, 존재여부를 승인받자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 돌연변이를 비정상으로 만든 구도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소위 정상인들에게 정상성을 구걸하자는 셈이다. 만일 소수자가 딱히 튀지않고, 인간적으로 하며, 기성 사회 체계에 위협적이지 않음을 증명하여 성원권을 얻어낸다면 어떨까. 이는 또 다른 소수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수동적으로 존재 의의를 구걸하는 행태가 되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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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이 같은 찰스의 행적을 다른 방향에서 해석해보고 싶다. 그가 소극적으로 돌연변이의 존재를 구걸한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한 것으로 말이다. 여기에서 떠오르는 텍스트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이야기를 다룬, 마태복음이다. 물론 마태복음을 둘러싸고도 비슷한 해석은 존재한다. 예수의 행적은 이미 예언되어있었고,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며 임무를 완수하지만, 이는 이미 예언된 일이 일어나는데 수동적으로 헌신한 것에 불과하다는 해석. 때문에, 예수의 삶을 놓고 실패를 통해서만 성공한다.’ 는 평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슬라보예 지젝은 이 구도를 완벽히 뒤집어 버린다. 그에 따르면, 예수는 정해진 예언에 수동적으로 순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업을 이룩하기 위해 예언의 한 가운데로 뛰어든다. 그는 과업의 완수를 위해, 베드로와 유다가 자신을 배반하길 사주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길 선택한다. 이를 통해 그가 완수하고자 한 과업은 이것이다. 희생, 인류에 대한 사랑을 통해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버리는 것. 그가 칼로서 유대민족을 구원하려 했다면, 결국 폭력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용서사랑을 이행했을 때, 이 폭력의 악순환은 동력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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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찰스와 젊은 찰스가 대면하는 순간, 흥미롭게도 늙은 찰스는 이런 조언을 건넨다. 찰스는 다른 이들의 생각을 읽는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위대한 능력은 타인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고, 그 능력은 가장 인간적인 힘에서 나온다는 조언. 그리고 그 힘이란 다름 아닌 희망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가히 종교적인 느낌까지 든다. 비록 나를 위협에 빠지게 한 사람(트라스크 박사)일 지라도, 그를 품어내고 다가올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겠다는 찰스의 모습은,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마태복음의 예수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그 담대함을 이끄는 힘은, 사랑이 혐오를 이길 것이라는 희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퀴어문화축제 당일 혐오시위를 펼쳤던 많은 이들은 신의 이름을 빌어 등장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십자가의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였는지 의문이다. 예수는 누군가를 공격하고 혐오하기 위해 십자가에 올라간 것이 아니다. 그는 그 혐오를,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 십자가에 올랐다. 그리고 그의 무기는 자신을 미워한 사람들까지도 품을 수 있는 사랑이었다. 정말 역설적인 것은, 이 무리들이 그렇게도 반대한 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이 사랑이 혐오를 이긴다라는 것이다. 그날 퍼레이드를 방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결국 퍼레이드 행렬은 연세로를 떠나, 이대 앞을 지나, 신촌 전체를 돌았다. 정말 안 될 것 같지만, 그렇게, 아기가 걸음마를 떼듯, 행렬은 거리로 나아갔다. 그 가슴 벅찬 순간을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그리고 믿는다. 맞다, 결국 사랑은 혐오를 이긴다. 이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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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짱재밌음 | 2014.06.27 16:41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3편의 아쉬움을 휙 날려버린 브라이언 싱어의 저력!!!! 엑스맨은 소수자 코드로 읽지 않을 수가 없죠. 글 재밌게 읽고 갑니다~~
스머프 | 2014.07.01 00:18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 감사드립니다. 정말 모 평론가의 말마따나 약은 약사에게 엑스맨은 브라이언 싱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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