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 소란
늘, 우리는 여기에 있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 아니, 드러내지 않을 뿐이라고 해야 더 적절한 표현이겠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마포구가 얼마나 퀴어스러운 지역인지, 내가 7년째 살고 있는 망원동만 해도 그렇다. 시장에 찬거리를 사러 갈 때나 한강을 걸을 때면 쉴 새 없이 레이다가 돌아간다. ‘걸어다니는 커밍아웃’인 애인 덕분에 그들 머리 속 레이다도 힘차게 돌아갈 것이다. 우리는 눈도 맞추지 않고 조용히 서로를 지나치지만 분명히 알고 있다. 우리가 서로 같은 과에 속하는 사람들임을. 매번 그것이 안타까웠다. 우리는 이렇게 함께 살고 있지만 보이지도, 드러나지도 않는다는 것이. 기대 섞인 호기심도 없지 않았다. 각각의 붉은 점들이 선으로 이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가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한다면, 서로의 손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이 지역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변해갈까, 하는.
그러니까 이건 정말 신나는, 상상이잖아!
마을버스 광고는,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마레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유권자 연대로 시작한 마레연은 지역에서 퀴어 주민의 가시화라는 의미 있는 첫 발을 내딛었고, 우리는 애당초 이 정도로 만족할 마음 따위 조금도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뭉그러뜨리지 않으면서 지역의 일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고, 지역 정책과 제도에서 퀴어라는 이유로 배제되고 싶지 않았다. 퀴어라고 해서 배척당하지 않는 공간에서 열심히 사랑하고 즐겁게 살고 싶었다. 지역의 모든 학교에서 정체성을 비롯한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인권 교육을 실시하고, 주민들이 퀴어 영화를 함께 감상하고, 어떤 정책이나 제도를 시행함에 있어 항상 퀴어의 존재를 인지하고 고려하고, 집집마다 무지개 깃발이 펄럭이는-
마을에서라면 이런 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는 감히 꿈꾸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고, 그 방법을 모색하던 차에 일명 ‘퀴어버스’라고 불리는 마을버스 광고를 떠올리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홍대와 합정, 망원 등지를 도는 16번과 9번은 그야말로 마의 퀴어버스였다. 퀴어들의 주거지와 서식지, 유흥지를 통틀어 도는 셈이니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은 곧잘 버스에서 만난 ‘띵똥’(퀴어를 가리키는 은어)들의 이야기를 하며 흥분했다(건전한 흥분임미다 흠흠). 그래, 마을버스 광고를 하자. 그렇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마레연을, 우리의 존재를 알릴 수 있을 거야.
붉은 마음들이 모여 광고를 이루었네
마을버스 한 달 광고 비용을 부랴부랴 알아봤더니 30만원이란다. 돈이 모자랐다. 돈이 모자라면 돈을 모으면 된다. 마을버스 광고 비용을 모금하는 후원 밥상을 열기로 했다. 돈도 돈이지만, 전국 최초의 퀴어 버스 광고라니, 퀴어 운동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액숀이지 않은가.
이왕 먹는 밥 씬나게, 쿵짝쿵짝 동네 잔치처럼 해보자며 공연팀도 섭외했다. 사랑스러운 마을 아티스트들-우클렐레 시스터즈와 쏘시리어스, 모멘토+율ㄹ(출연순)-이 기꺼이 응해주었다. 기깔나는 조명도, 제대로 된 음향도 없는 소박한 멍석에도 개의치 않고 빛나는 재능을 나누어주셨다.
쉐프 말테님과 쿠나님이 쉰 명이 넘는 사람들의 배를 일제히 통통하게 만드는 궁극의 비빔밥을 제조했다. 밥이 너무 맛있어서 연신 퍼먹느라 정신 없었던 기억이(아 또 먹고 싶다요). 리허설 하느라 일찍 온 공연팀, 나를 비롯해 일 없이 얼쩡거리던 동네 이웃들이 두 팔 걷고 나서서 요리를 도왔다. 공정무역 커피가게 <커피문>에서는 원두를 파격적으로 할인해주신 덕에 입가심까지 제대로 했다.
퀴어들의 옷장과 책장을 여는 벼룩시장도 벌였다. 각종 옷가지에서부터 책, CD, 용도를 알 수 없는 희한한 용품까지 다양한 물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스윙시스터즈, 언니네트워크,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SF), 한국성소수자문화인권센터 등 여러 커뮤니티에서도 물품 후원을 해주셨다. 또 한 켠에서는 베스님이 일러스트를 그려주셨고, 또 한 켠에서는 나와 무지개너머님이 타로 부스를 진행했다. 이 모든 일이 마포구 민중의 집에서 열렸다. 공간을 내어주신 민중의 집도 감사 리스트에서 빼먹을 수 없다.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고 벼룩시장과 공연을 즐기는 사이, 무려 60만500원이라는 거금이 모였다. 예상했던 금액의 딱 두 배가 모였다. 우리는 마을버스의 경우 외부 광고보다 내부 광고가 더 주목도가 높다고 생각해 내부 광고를 보다 긴 기간 동안 여러 대에 나누어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마을버스 광고 아이디어 공모를 진행했고, 은밀하면서도 살갑게 말을 거는 듯한 틈새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다. 마을버스 광고를 하기로 하면서 많은 분들이 지지해주셨지만 한 켠에서는 “조용히 잘 살고 있는” 퀴어들의 삶을 오히려 들쑤시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충분히 일리 있는 의견이다. 퀴어의 존재가 가시화되기 시작할 때 호모포비아들의 공격 또한 시작되었다. 나 또한 완전히 두렵지 않다고 말할 깜냥은 못 된다.
퀴어 내지는 퀴어에 관심 있는 이성애자들만 알 수 있는 상징을 넣고, ‘퀴어’나 ‘성소수자’ 대신 ‘LGBTAIQ’로 명기한 것은 이러한 우려를 고려한 것이다. 이 광고를 보는 퀴어 이웃들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고 마레연에 들르기를 바라는, 고양이스러운 구애랄까요 훗훗.
회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다듬은 최종 시안을 광고 회사에 보내고, 퀴어 커뮤니티라는 이유로 광고 게재가 거부당하진 않을까 내심 초조해하는 며칠이 흘렀다. 그리고 6월 15일, 드디어 우리의 광고가 버스에 당당히 걸렸다. 전국 최초의 퀴어 버스 광고가, 시작된 것이다!
혁명은 가만가만히,
버스 광고 논의를 처음 시작한 2010년 12월의 모두모임에서 광고가 게재되기까지, 적잖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분들이 마음을 모아주셨다. 그 덕에 무사히 광고 게재까지 진행할 수 있었다. 모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광고 게재 후 열흘쯤, 회원들은 광고와의 조우를 기다리며 두근두근 가슴 설레며 버스에 오른다. 외부의 반응이랄까-이를테면 교회 신도들의 항의라든가 ‘광고 보고 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마레연 책임져라!’ 따위의- 하는 것은 없었고, 회원들이 물밀듯이 가입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열흘밖에 되지 않았고 그 사이 광고를 보고 가입했다는 회원도 계셨다.
분명하고 또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간 버스에서, 시장에서, 카페에서 마주쳤던 퀴어 이웃들이 틀림없이 이 광고를 마주하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무지개 상징과 LGBTAIQ1)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혼자 놀라 주변을 살폈거나 마레연이라는 이름과 카페 주소를 암기하려고 애썼거나, 괜스레 붉어지는 낯을 수습하려 애썼거나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돌아와 친구 또는 애인과 광고 이야기를 하겠지, “이 동네 정말 못 말릴 변태 동네야”라며 깔깔거렸을지도, 동네에서 퀴어 주민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어느 날에는 가만히 퀴어밥상이나 정모에 나와 수줍게 인사를 건네주시면, 그렇게 붉은 점들이 가만가만히 붉은 선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혁명은 그렇게 조용히 시작되는 법이니까.
1) LGBTAIQ : Lesbian(레즈비언, 여성동성애자), Gay(게이, 남성동성애자), Bisexual(바이섹슈얼, 양성애자), Transgender(트렌스젠더, 성전환자), Asexual(에이섹슈얼, 무성애자), Intersexual(인터섹슈얼, 간성), Questioning(퀘스쳐닝) 각 단어의 첫자를 나열한 것으로, '성적소수자'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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