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희원(생강)1
사람들은 내가 미용성형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 늘 성형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본인이라면 성형을 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를 묻곤 한다.
매번 나는 적절한 답변을 준비하지 못해 "글쎄요..."로 시작하는 긴긴 답변을 끝맺느라 곤혹스러워 하곤 했었다. 내가 경험하는 어려움은 이런 질문들이 요구하는 '판단'이 성형이라는 의료기술 자체와 성형을 시도하는 여성들 사이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고, 실제 찬성과 반대의 주장들이 찬성과 반대 사이의 긴 스펙트럼을 오가는 여성의 몸 경험을 설명하지 않은 채 특정한 방식으로 여성을 '통제'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는 불편함 때문이었다.
한국사회에서 미용성형은 자신감, 자아 존중감 회복 등 심리학적인 상식을 동원하거나 더 나은 삶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권유'되지만, 동시에 고통, 위험, 불확실성 등을 들어 성형을 적절한 수준으로 '자제'할 것 또한 강조되는데, 이 모순적인 지형은 성형의료산업의 주체들이 아니라 여성들에게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책임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잘 관리된 외모를 성공과 연결짓는 '예외적인' 신화들, 그리고 외모에 대한 끊임없는 판단들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더 나은 몸과 자아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기술들과 거리를 두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고, 나 역시 이러한 현실들과 복잡한 방식으로 얽혀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리고 이 맥락에 관여하고 있는 나의 위치에서 볼 때, 이른바 성형에 관한 '윤리적인' 주장들이 외모보다는 내면을 가꾸는데 치중해야 한다든지, 지배적인 외모 규범에 순응하기 위해 여성들이 고통과 비용, 시간을 감수하지 말아야 한다든지, 다양한 미 규범을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든지, 의사들은 자신들의 전문성을 본연의 임무인 건강관리를 위해 쓰도록 해야 한다든지 등의 이야기는(공감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미용성형이 일상적인 몸 관리 차원이 되고 있는 현재적 맥락을 간과한 '원칙론적인 주장'에 머물 뿐이라고 생각된다. 성형에 대한 윤리적인 질문을 구성하는 것은 미용성형에 대한 찬성, 반대라는 이성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 아니라, 실제 여성들이 각자의 사회적 위치에서 경험하는 불안과 불인정의 정서들이 미용성형 의료기술이 제공하는 가능성들, 약속들과 어떻게 접합되고 있는지 구체적인 탐색을 통하여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주 모델 김유리씨의 사망 소식과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갖가지 추측성 보도들을 접하면서 나는 지난 해 만났던 대학생이자 패션모델인 A를 떠올렸다. 김유리의 죽음과 관련한 기사들에서 부각되었던 것은 거식증이 의심될 만큼 마른 그녀의 몸이었고, 식사량을 조절하고 엄청난 양의 운동을 해야 하며 몸의 온갖 부위들을 줄자로 재면서 측정 당하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의 쇼에 한 번 서기 위해 엄청난 경쟁을 통과해야 하고 이른바 성공하는 '예외'에 끼지 못한다면 모델업계에 남아있기 어려운 현실들을 토로하는 그녀의 글이었다.
A 역시 몸의 피부가 '속살'이 아니라 '의상'이어야 하는 모델에게 몸 관리가 어떠해야 하는지, 소위 잘 나가는 성공한 모델이 아니라면 자신을 대체할 다른 모델은 얼마든지 있으므로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끊임없이 몸을 준비된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기적인 일자리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기본적인 생활비가 없어 전화나 전기가 끊기는 경험을 하는 동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십대 때부터 모델로 활동했던 그녀는 이름이 제법 알려진 편이지만, 이십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나이든' 모델의 위치에 있게 되어 한국에서 기회를 잡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하였다. 모델은 몸의 움직임, 눈빛을 통해 디자이너나 브랜드의 의상을 최대한 부각시킴으로써 쇼와 사진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서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일터에서 모델이 쌓은 숙련된 경험들은 안정적인 커리어로 연결되기보다 새롭게 등장하는 젊고 마른 몸을 가진 모델들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치환된다.
"연예인들 성형에 완전히 중독되어서 나오잖아요. 그게 약간 이해가 가요. 이해가 좀 되고 심지어 광대뼈를 깎고 턱을 깎고 이런 수술 하는 거 보면 그거 역시도 그냥 자기 관리라고 이제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확률은 반반이죠. 해서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는 거지만 '고군분투' 하는 거고 '모험'일 수 있구요. 그 옆에서 부추김을 견뎌내기가 조금 힘들어요. '네가 코만 하면 예쁠 거 같애' 이런 말들을 하잖아요. 그 전에는 작은 쁘띠 성형이라고 하는 게 없었는데 지금은 쁘띠 성형이라는 개념이 생겼고 가능해졌잖아요. 심지어 넣었다 뺄 수도 있게 됐고. 그러니까 유혹을 거절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A는 성형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자기관리의 차원이 되지만, 이는 위험과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고군분투'이자 '모험'이 된다고 이야기했었다. 몸에 대한 중압감과 불안감은 단지 모델인 그녀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님을 여성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안정적인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며, 삶 속에서 자신의 몸으로 행한 일들의 가치를 인정받기 보다 외모에 대한 지속적인 판단과 차별, 무시, 모욕에 노출되는 위치에 있는 여성들은 A가 느끼는 불안의 정서들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여성들로 하여금 몸 관리/변형에 내재한 위험, 불확실성과 자신이 갖게 될 가능성을 저울질하게 만든다. 더 나은 삶을 기대하는 자기관리가 몸, 외모에 관한 것이 되고 미용성형이라는 의료기술이 제공하는 가능성들이 여기에 더해질 때, 고통, 위험, 불확실성 등은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 되고 몸 관리는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으로 의미된다.
미용성형이 거대한 규모의 여성들이 참여하는 '집단적인' 실천이 되고 있는 현재적 맥락은 삶에 대한 불안 혹은 만족감이 몸에 대한 것으로 축약되고 있는 상황에서 느끼는 정서들이 여성들 사이에 폭넓게 공유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용성형에 관한 이야기들이 성형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한정되거나, 외모, 성형에 관한 정보, 지식의 공유로 제약되면서, 정작 상품화된 회로를 순환하는 여성의 몸이 어떻게 의미되고 경험되며 변형되는지 ‘생산적으로’ 공론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미용성형이 개인적인 차원의 기획과 노력, 도전으로 의미되면서 여성들 간의 관계를 경쟁적인 것으로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미용성형은 여성들의 외모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생명과는 무관한 의료기술이므로 ‘일반적인’ 의료행위와는 다른 영역이라는 성별화된 관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형에 대한 윤리적인 질문은 미용성형에 대한 성별화된 관념이 시장의 상품화 회로 속에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는지, 기술의 가능성과 개인적인 삶의 기대, 희망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그리고 여성이 경험하는 고통의 다양한 결들이 무화되면서 몸으로부터의 소외를 경험하는 지점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모으는 작업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는 이미 '집단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미용성형 실천을 '사회적인 것'으로 만드는 실천이며,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원자화된 '자아'와의 과도한 동일시가 아니라, 나와 함께 세상을 사는 다른 여성들과 연결성 속에서 '자아'를 상상하는 '의존적인' 관계의 회복을 필요로 한다.
- 박사논문, 미용성형의료 네트워크의 재구성과 소비자/환자 주체의 형성, 태희원, 연세대(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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