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알 수 없는 헌법해석,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인가
◆ 정욜 (동성애자인권연대*)
유난히 화창한 날씨였다. 3월31일은 2008년 8월 군사법원에 의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이 된 구 군형법 92조의 최종 선고가 나오는 날이었다. 방청권을 나눠주는 시간보다 더 빨리 도착했지만, 헌재 앞으로 마실 나오신 어르신들 덕분에 나를 비롯해 꽤 많은 사람들이 방청권을 얻지 못했다. 재판관들의 판단으로 모든 것이 넘어간 이상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헌재 앞에서 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걱정을 하며 발만 동동거리고 있을 무렵 한 사법연수원생의 도움으로 1~2분을 남긴 시점에 헌법재판소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등장하자 여기저기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지난 3년 동안 4천 장이 넘는 탄원서를 조직하기 위해 동분서주 노력하였고 각계의 의견서가 제출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보수교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위헌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헌법재판소 소장이 입을 떼었다. 손에 불끈 쥐며 그가 말하는 모든 내용을 단 하나도 빼놓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사건 2008헌가21 군형법 제92조 위헌제청 사건에 대해 주문부터 하겠습니다.” “제92조 중 ‘기타 추행’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합헌 5명, 위한 3명, 한정 위헌 1명으로 구 군형법 92조는 최종 합헌 결정이 났다.
구 군형법 92조 ‘계간 기타 추행을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라는 조항은 동성 간 성행위를 계간으로 비하하고 있음은 물론 합의에 의한 관계조차도 추한 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대표적인 문제 법률이다. 동성애자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고 있고 합의에 의한 성행위조차 처벌로 강제하고 있어 여성, 성소수자 인권단체는 물론 국가인권위원회조차도 해당 법률의 개정을 계속 요구해왔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는지 국방부와 보수교계의 의견서를 옮겨놓은 듯한 내용의 결정문을 가지고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은 분명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모든 국민에서 동성애자를 철저히 배제하였다. 판단 근거로 보수교계의 허위 비방 정보를 그대로 인용하였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바른 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 등의 보수교계와 단체에서는 집요할 정도로 동성애자의 삶을 흠집 내어 왔다. 군형법 92조가 위헌 결정이라도 나면 군 기강이 흔들리고 군대 내에서 동성 간 성행위가 만연할 것처럼 호도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위선적이게도 2011년 신년사에서 모든 분야에서 헌법의 이념과 가치가 존중되고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불과 3개월 만에 헌법재판소의 약속은 거짓임이 판명 났다. 동성애가 마치 군대에서 전염병처럼 번져나갈 것처럼 묘사하고 합의에 의한 성행위를 ‘강제성이 없는 음란행위’로 정의해놓은 결정문에서는 헌법재판소의 조악한 인권의식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구 군형법 92조 최종 선고결정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갈 길이 멀다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헌법재판소가 구 군형법 제92조에 대한 위헌결정 여부를 차일피일 미루는 동안 국회는 군형법 92조를 대폭 개정하였고 그동안 문제시되어왔던 ‘계간’ 금지조항을 삭제하기는커녕 법정형이 1년 이하의 징역에서 2년 이하로 상향조정되었다. 더 악화된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원점에 서 있지 않다. 3년 동안의 활동 경험을 통해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행위가 과연 형법으로 처벌받아야 하는 행위인지 사회적으로 의문을 던질 수 있었고 군대에서 성폭력, 성희롱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실이 과연 동성애자들 때문인지 반문해 왔다. 보수교계와의 쟁점다툼에서도 절대 밀리지 않았다. 그들은 기자회견 현장에서 “대한민국 만세. 동성애를 막아냈다!”고 외쳐댔지만 우리는 앞으로 군형법 92조의 개정은 물론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큰 현안이 반드시 관철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동성애자인권연대는? (http://www.lgbtpride.or.kr/)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련, Solidarity for LGBT Human Rights of Korea)는 한국의 성소수자(LGBT) 인권단체이다. 1997년 9월 9일 '가칭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 건설준비위원회'가 발족하고 1997년 11월 2일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으로 정식 출범했다. 1998년 8월 1일 '동성애자인권연대'로 명칭을 변경하고 현재까지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인권 향상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동인련은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인터섹슈얼 등이 모여 함께 활동하며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이성애자들도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활동한다. 또한 성소수자 억압의 문제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억압의 문제와 동떨어져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HIV/AIDS감염인 등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고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한 행동을 지지한다. 이러한 정신에 따라 동인련은 반전운동, 한미FTA반대운동, 2008년 촛불운동을 비롯해 여러 사회운동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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