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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0 16:15
 

우리 엄마 식당노동자

이향지

엄마가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십년도 더 된 일이다.
아버지가 일하시던 회사가 몇 해 전에 부도를 맞고, 도무지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엄마가 나서게 되었다. 20대였던 우리 세 남매는 엄마의 취직 소식에 무척 당황했다. 왜 엄마가 그런 일을 해야 하냐며 많이 속상해했다. 아빠는 엄마가 일하는 것을 싫어했다. 무슨 일이라도 하려고 하면 굉장히 화를 내셨다. 엄마가 그런 아빠의 그늘 밑에 있는 모습을 보기도 안타까웠지만 남의 식당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기란 더 속상했다. 우리 세 남매는 물론 아빠에게도 무척 우울한 일이었다. 하지만 늦깍이로 대학을 다니던 나는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엄마가 처음 일한 곳은 분식집이었다.
라볶기, 김밥, 라면 같은 것을 주로 파는 분식집. 나는 엄마가 걱정돼서 시간이 날 때면 가게에 가서 서성거리거나 음식을 먹거나 했다. 엄마가 집에 없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고 왠지 엄마 곁에 내가 있어 주어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 때문에. 그래도 엄마는 웃으면서 말했다.

잘 먹었습니다, 하고 인사하고 가는 손님들 보면 귀엽고 예뻐.
맛있는 밥 해주고 배불리 먹고 가니까 이게 안 좋은 일은 아니야.”


하지만 힘든 이야기가 훨씬 더 많았다.

사실 엄마는 적은 돈이라도 매달 꼬박 꼬박 주머니에 들어오는 것이 신기하고 기쁘기도 했던 것 같다. ‘내가 왜 진작 일하러 안 나갔을까?’ 하면서 아빠 그늘 밑에서 보내버린 시간들을 후회하기도 하셨다. 그렇게 우리 엄마는 그 생활에 익숙해져갔던 것 같다. 엄마가 일을 그만두기를 바랐던 철없는 우리들도 서서히 엄마의 ‘다른 길’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곧 다른 곳으로 일터를 옮기셨다.
설거지만 하려니 벌이가 적어 안 되겠다는 이야기를 몇 번 하던 참이었다. 찬모(반찬 만드는 이)가 와서 일하는 것을 보니 엄마도 다 할 수 있겠더란다. 엄마는 무슨 ‘탕’종류를 만드는 집으로 가셨다. 그곳에서 꽤 오랫동안 일하셨는데 그곳에서도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다. 첫 번째는 조미료를 너무 많이 쓴다는 것이었다. 된장찌개에도 미원이나 다시다 같은 조미료를 듬뿍 듬뿍 넣는다고, 나에게 식당 음식 먹지 말라고 당부를 하셨다. 또 그 집은 주방이 물이 잘 빠지지 않아 늘 장화를 신고 일을 하셨는데 그해 겨울에 동상에 걸리고 말았다.


엄마가 일하는 대부분의 식당은 한 달에 하루 밖에 쉬지 못했다.

엄마가 그렇게 일하는 사이 우리 남매는 하나 둘 결혼을 했고 아빠는 일을 했다가 또 쉬었다가 했다. 결혼을 한 다음에도 엄마 얼굴을 보려면 우리들은 엄마가 쉬는 날을 맞추어서 가야 했고 엄마는 자식들이 찾아왔다고 또 쉬지도 못하고 서서 음식을 만드셨다. ‘나가서 사먹자’고 해도 엄마는 막무가내 싫다고 하셨다. 엄마의 생일날에는 올케언니가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다. 엄마가 식당음식을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결혼을 해서 어린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고 동생은 군대를 다녀와 남은 공부를 마저 하고 있었다. 체대라서 등록금 말고도 돈 쓸 일이 많았다. 골프 수업을 들을 때는 골프채를 사야 했고 스키 과목을 들을 때는 스키 장비를 사야 했다. 그 밖에도 츄리닝 한 벌 사는데 수십만원은 뚝딱이었다. 아버지의 자동차 할부값, 동생의 카드 값, 통신비, 생활비. 모두 엄마가 번 돈으로 충당했다. 엄마는 “평생 니 아빠한테 의지하고 살았으니 이제 내가 벌면 된다”면서 모든 걸 긍정적으로 말씀하셨다.


엄마는 어느 날부터인가 ‘일당’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파출부 소개하는 사무실에 등록을 해놓고 연락 오는 곳으로 일을 하러 나가셨다. 수많은 곳을 돌아다니셨다. 냉면집, 추어탕집, 돌솥집.... 돌솥집 같은 곳은 일하면서 살을 데기도 하고 무거워서 손목을 잘 못쓰게 되기도 했다.


50대에 식당 일을 나가기 시작한 엄마는 식당 노동자로 일하면서 환갑을 맞았다.
엄마가 힘들어 한 것은 고된 노동이 아니었다.

첫 번 째는 사람대접 받지 못할 때 느끼는 서러움과 울분이었다.
한번은 사장이 직원들을 하도 함부로 대해서 누구도 월급제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월급을 많이 주고, 또 보너스를 넉넉히 준다는 이유로 엄마는 그 집에서 꾹 참고 일을 하셨다. 사람들이 모두 “이 집에서 이렇게 오래 일하는 사람은 처음본다”고 할 정도로. 그러다 엄마도 더 이상 못 견딜 지경이 되어 그 집을 떠났다. 날마다 화풀이는 물론이고 기분이 수시로 변해서 마구 부려먹고,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랑 있다 보니 엄마 성격마저 나빠지는 것 같다면서 그 집을 그만두셨다.
그러나 그 집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돈을 얼마 더 줄테니 다시 와 달라, 오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면서 말이다. 엄마는 ‘다시는 화풀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다시 그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몇 달 못가 사장은 다시 본색을 드러냈고 엄마는 미련 없이 그 집을 떠나왔다. 사장은 엄마 때문에 손해를 본다면서 월급도 적게 입금을 해주었다. 엄마는 기어코 그 집을 쫓아 다니면서 밀린 월급을 받아냈다.


엄마가 또 힘들어한 것은 근무 시간이 너무 길고 일요일 날 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자식, 손주들 얼굴 한번 보려고 해도 일요일 날 만날 수가 없어 다들 속상해했다. 물론 가장 속상한 것은 엄마였을 것이다. 식당 일은 대부분 오전 11시에 시작해서 밤10시가 넘어야 끝이 났다. 그러니 식구들이 모이는 날에는 엄마가 일하시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기도 했다. 가족들 생일이 있어 만나는 날에는 엄마가 쉬는 일요일로 날짜를 잡기도 했다. 그러나 늘 휴식이 부족해 엄마는 힘들어 했다. 몸도 마음도...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갈비뼈를 다치는 일이 벌어졌다.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려고 전등 스위치를 찾다 벽에 부딪쳤는데 그대로 갈비뼈가 부러진 것이다. 엄마는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해 두 달가량을 쉬어야 했다. 그러면서 ‘돈을 좀 덜 벌더라도 좀 일찍 끝나고, 일요일은 쉬는 곳에서 일을 해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일당으로 일을 하면서 쉬고 싶은 날 쉬고, 일할 수 있는 스케줄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우리 엄마는 식당에서 일하신다.
처음 분식집에서 설거지를 할 때 보다는 일터를 고를 때나 사람들을 대할 때, 훨씬 노련해 진 것 같지만 식당의 근무 조건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그다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식당에 가면 먹고 난 그릇은 치우기 좋게 잔반과 그릇은 가지런히 모아두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여성들이 대부분인 식당. 일터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에 힘 모아서 대처할 수 있도록 누군가가 나서 돕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맛있는 밥을 해주는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고 충분히 쉴 수 있다면 누군가 식당에서 일한다고 할 때 슬퍼하거나 속상해하는 대신 ‘잘됐다’고 축하를 해줄 수 있을텐데.



 

  식당에서 일하는 엄마가 있는 자녀라면, 엄마의 노동을 본 기억과 경험,

  그리고 식당에서 일하는 엄마의 노동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그 마음을 담아 저희에게 전해주세요.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꼭 자녀가 아니더라도,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본 식당여성노동자의 현실,

  식당노동자에게 함부로 하는 고객이나 업주를 봤다면 어떤 것이 있었는지,

  식당여성노동자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걸 느꼈다면 어떤것이 있었는지..
  그리고 식당여성노동자와 마주했던 나의 경험.. 나의 태도는 어떠했는지..

 

  그 어떤 이야기라도 저희에게 전해주세요

  저희가 여러분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창이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식당여성노동자의 인권적 노동환경을 만드는 첫걸음에 함께해 주세요!

  여성노동팀 ( tel 02-737-5763
equallove@womenlink.or.kr)

                                      

저작자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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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레몬트리레몬 | 2010/09/23 20:22 | DEL
하루 12시간이라는 노동시간부터 개선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일주일 일하다 편도선이 부어올라 병원에도 못 가고 3일이나 아무 일도 못하고 누워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긍정적인 마음 | 2010/10/17 20: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건강정㈆보Ι <좋은 글 정보 감사합니다.<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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